책
매혹당한 사람들
이베
2018. 4. 22. 15:38
영화를 봐야지 했다가 뭘 읽을지 몰라서 읽은 책. 영화 리뷰도 이어서 쓸 예정. 책의 평점은 4.0?
작년에 영화로도 개봉한 소설. 18세기 중반쯤, 전쟁 중 여학교에 다친 한 남자가 머물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자 다수 남자 하나… 저 설명만 보면 정말 하렘물 같은데 거의 스릴러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아마 여성주의 서사물로 취급(?)되지 않았을까? 여성 캐릭터가 엄청 나오고, 남성캐릭터는 하나가 나오고, 그 남성캐릭터의 주변으로 뭔가 일어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여성캐릭터들끼리의 감정이나 행동이 더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그럴 수도.
각 캐릭터의 시점으로(다시점) 전개가 되는 식이라, 그 캐릭터의 심리 묘사와 맥버니, 학교, 전쟁, 부모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노골적으로 알 수 있게 해두었다. 그렇지만 문제의 인물인 맥버니의 시점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 게 또 재밌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그가 한 언행 중 어느 것이 진심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걸 한 이유는 맥버니가 무슨 행동을 했어도 그의 사정따위 필요 없다는 뜻인건지, 뭔지. 사실 별로 필요 없는 부분이기는 했다.
여성 캐릭터들은 맥버니가 오기 전부터 쌓아왔던 관계도가 있고, 그건 맥버니의 사건을 중심에 두곤 은근히 드러난다. 맥버니가 나타난 후 더 깊어지는 갈등도 있고, 나아지는 것도 있다.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도 꽤 재밌다. 겉이 잔잔했고 안은 술렁이던 강에다가 돌을 던졌더니 겉마저 물보라가 이는 그런 느낌?
작품 전체에서 배경 시대가 18세기다 보니까 쉽게 여성 혐오적인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점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며 보는 수밖에 없었다. 질투나 흠모, '여성스럽지 못한'(^^;) 감정이나, 분노, 공포, 여러 가지 감정들이 봇물 쏟아지듯 밀려 나온다. 밀려나오는 걸 부끄러워 하지만 숨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인물들은 쉽게 잔인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나오는 캐릭터의 연령대가 선생님들과 매티(하녀)를 제외하고는 10대들이라, 더 그런 감정의 파도가 크게 보이기도 했는데, 맥버니의 어떤 부분의 감정이 가장 도무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텐션으로 오락가락했다. (10대도 아닌데..)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맥버니는 작중 중반쯤 가면 항상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내가 여기 있는 당신들을 다 어쩔 수 있다는 듯 말한다. 그쯤 되면 정이 떨어질 만도 한데 안 그렇다는 게 신기할 따름. 근데 뭐 진짜 하렘물처럼 모든 여성 캐릭터가 그에게 호감이나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다. 거의 다 애증에 가까운 느낌? 그저 혐오하는 캐릭터도 있고.
초반의 전개가 조금 루즈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아마 캐릭터의 성격이나 생각들을 보여줘야 해서 그랬던 것도 같다. 그런 걸 늘어놓다보면 어쩔 수 없고, 캐릭터가 많기도 하니까.
마무리 지을 때의 텐션이 확 낮아진다고 해야 할지, 높아진다고 해야 할지. 그 직전까지는 긴장감이 고조 되고 어떻게 될 것인지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다가, 갑작스레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고는 조용하고 잔잔한 마무리를 짓는다. 그 엔딩이 부글부글 끓던 냄비가 갑자기 사그라든 느낌을 받는다기보다는 치열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는 범행현장을 싹 청소한, 그리고 방긋 웃으며 걸어나오는 완전 범죄를 지었을 때의 분위기와 닮았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