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이베 2018. 8. 21. 13:48



 오랜만에 집어든 구병모 작가님의 책이다. 구병모 작가님을 학생 시절 굉장히 좋아했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시작으로, <아가미>, <파과>,<피그말리온 아이들>, <방주로 오세요>, <고의는 아니지만>… 찾아 적다보니 구병모 작가님이 단독으로 낸 책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다. 읽은지 좀 된 것들이라 내용을 정확히 묘사할 수는 없지만. <네 이웃의 식탁>을 읽으며 느끼던 건, 이때까지 읽었던 구병모 작가님의 책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는 느낌이라면, 이 책은 아주 많이 현실적이다.



 정부에서 지은 공동주택에 입주하기 시작하는 가족들, 지금은 없어진 듯한 이웃간의 정을 중시하고, 이웃끼리 뭉쳐서 무언가를 하는 분위기의 공간. 그에서 멀어졌기에 발생하는 일과, 너무 가까웠기에 발생하는 일, 이웃과 가까워져 정작 자신의 옆에 있는 이와는 멀어지는 일 등이 담겨있다.


 처음에 이야기가 길게 나온 건 조효내였다. 프리랜서 동화 그림 작가. 이 부분을 읽는 동안에, 얼마나 숨이 막히던지. 커리어를 놓을 수 없고, 편한 직업 같아 보이지만 불안한 직업인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가진 조효내가, 임신과 출산으로 자신의 일을 잃지 않으려 아득바득 애를 쓰며 붓을 잡고 놓지 못하는 모습에…. 일이 바빠 이웃간에 교류를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고, 삶의 패턴이 아예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조효내의 모습을 아니꼽게 보는 타인들의 모습까지. 숨이 막히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요진과 재강이었다. 이웃과 바람이 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네 이웃의 식탁>에서는, 이건 바람이라고 할 수 없다. 남자 쪽에서 걸어오는 일방적인 작업(심지어는 선을 넘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누군가에게 말해봤자 너가 예민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들)과 그것을 어떻게 받아넘기는 것이 사회성 있고 '일반적인' 모습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요진.

 '발화 당사자의 미묘한 제스처나 그 자리의 공기, 청자의 심리가 지워진다는 점이, 언어 자체가 지닌 약점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그냥, 슬쩍 한번, 사람 구해주려다가 딱 붙들었는데 그걸 갖고 민감하게 굴면 앞으로 무서워서 누굴 구해요. 안 그러겠어요? (...) 그 과정에서 신재강이 손끝 하나 댄 적 없는데 이웃집 여자에게 허리니 가슴이니 들먹였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도 되는 건지 요진은 확신할 수 없었고,'

 이 부분의 묘사에서, 구병모 작가님이 성희롱이나 성추행 사실을 남에게 밝히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관계를 이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으셨구나.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이 전보다 현실적이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그러니까 따뜻한 척 하면서도 차가운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작가님도 지금 사회의 모습을 보고 좀 더 말하고 싶은 게 많아져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읽었던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은 차가운 모습을 했지만 사실은 이상하게 따뜻한 소설이었는데.


 보는 내내 어딘가 금이 가서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을 보는 기분이었다. 인물들은 그 틈새 사이로 어떻게든 보충제를 밀어넣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사실은 그 공동 주택이라는 것 자체가 무너지기 직전인 건물이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을 어딘가에 집어넣고, 숲과 자연이 있다고 웃으며 말하고, 뒤로는 아이를 낳으라고 닥달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