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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 표류기

이베 2018. 6. 4. 11:52


 포스터가 망친 영화 중 하나로 알고 있는 영화. 영상미도 좋고, 섬세하게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대체 이 포스터는 뭘까? 누가 봐도 아동을 겨냥한 개그물 포스터다. 구글에 검색 조금만 하면 리디자인이 우르르 나오는 게 안타까움.


 사회 속에서 소외 되어 도시 속에 무인도를 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남자 김씨 (라고 칭하겠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female Kim, male Kim 이라고 기제되어 올라가는 것에서 따옴) 는 애인이 있지만 헤어졌고, 애매한 나이에 구직을 하러 다니고 있고, 빌린 돈보다 이자가 더 크고…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나만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한강에서 자살기도를 하는데, 한강 중간에 있는 섬에 불시착(?) 해서 산다.

 내가 살아버리다니! 나는 죽는 것조차 할 수 없다니! 63빌딩이라면 확실히 죽을 수 있다. 라는 생각에 그 섬에서 구출되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는다. 목을 매고 죽을까, 하다가 배가 아파서 큰일을 보러 쭈그려 앉았다가 과거에 자주 먹었던 꽃을 발견하고 그래, 죽으면 죽는 거고 여기서 대충 살아가보자 하는 생각을 한다. 남자 김씨는 우습게도 모든 걸 놓아버리자 (뭘 먹었을 때 죽으면 죽는 거고, 아니면 사는 거지!) 편해진다. 그렇게 원시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데 재밌는 점이라고 하면 이 섬이 한강 한 가운데에 있다보니 차도 보고 사람도 보고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오리배(ㅋㅋㅋ)로 갈 수 있는 섬….

 그 시간 여자 김씨는 싸이월드 얼짱이다. 사실 싸이월드를 너무 오랜만에 보고, 그 당시 인터넷 말투 너무 오랜만에 봐서 되게 웃기고 추억이었음. 아무튼, 싸이월드 얼짱이긴 한데, 그게 다 사진 도용이다. 실제로 그녀는 (설정상) 못생기고 사회성 떨어지는 캐릭터… 인데 정려원이 예쁘다고. 뭐 그렇게 인터넷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 그녀의 취미는 달 사진 찍기, 그리고 민방위 훈련 때 텅 비어버린 도시 사진 찍기. 후자의 취미를 하려다가 섬에 있는 남자 김씨를 발견하게 된다.

 외계인과 일촌을 맺을 수 있을까요? 하는 말을 시발점으로 여자 김씨는 한참만에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의 눈을 비해 남자 김씨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되는 두 사람의 펜팔….


 단 이만큼의 면적을 세상으로 끌어안고 있는 여자와 단 이만큼의 면적을 갖지 못해서 발버둥치는 남자를 봤던 것 같다. 남자 김씨가 여자 김씨에게 누구냐고 물었을 때, 여자 김씨는 자신이 연기하던 그 여자의 사진을 프린트 해서 남자에게 보내려다가 멈칫한다. '진짜' 자신과 대화해주던 사람에게 거짓으로 굴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또 거짓으로 굴었다가 진실을 알게 된 남자 김씨가 자신을 면박줄 것이 두려웠던 걸까

 자신의 삶을 다 내려놓고 죽으려고 했더니, 겨우 지낼 곳이, 겨우 살 만한 곳이, 겨우 자신의 면적이 생긴 남자. 거기서 또 다 내려놓았더니 살아갈, 뭔가에 열중할 수 있는 희망을 찾는다. 이후에 다시 살아갈 면적을 빼앗긴 남자는, 고작 요만큼도 안 되는 거냐고, 아무 짓도 안 할게요,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하고 말한다.

 얼굴 하나, 목소리 하나, 제대로 된 정보 하나 모르는 두 사람은 친구였다. 결국 마지막에 여자 김씨를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게 만든 것은 남자 김씨였고, 남자 김씨가 죽지 못하게 막은 사람은 여자 김씨였다. 도심 속에서 단절된 채,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고독하게 무인도 라이프를 즐기던 두 사람은 적어도 서로의 면적에 한 사람이 들어오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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