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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이베 2018. 8. 11. 12:30


 내가 읽은 두 번째 황정은 작가님의 소설. 첫번째는 <계속해보겠습니다>였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누군가에게 추천 받았던 책인데, 굉장히 감정에 빠져 읽었던 책이라, <아무도 아닌>도 꽤 기대했다. 단편집이었고,  단편 하나하나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읽다보니 제목이 어째서 <아무도 아닌>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실은 아주 느리게 읽고, 안 읽은 날도 많아서 거의 2주 넘게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은 무거운 감정이 드는 작품을 잘 읽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주 느리게 읽었다.


 <아무도 아닌>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거의 다, 누군가를 잃었다. 아니면 외부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무언가에 처참히 당하는 중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 하지만 어딘가 빠진 느낌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들은 모두 아무도 아니다. 스쳐지나갈 사람들, 또는 소외되고 언저리로 밀려나서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를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양의 미래'와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이 좋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여운에 남았다.

 '양의 미래'는, 서점에서 일하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서점에서 만나 사귀게 된 남자가 떠나고 그가 돌봐주던 고양이는 남았다는 이야기도 하고, 별 일 없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진주'라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가 담배를 팔아달라고 했으나 거절한다. 그러자 진주는 밖에 있던 남자들에게 돌아간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 주인공은, 별 일 아니겠지, 하고 넘어가지만 그 이후 진주는 실종된다.

 묘한 죄책감, 매일 찾아오는 진주의 어머니…. 지금의 나라면, 위험하겠다 싶어서 신고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의 나였다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행동이 잘못 됐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신고를 했으면 좋았겠지. 주인공은 소녀와 남자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한 '목격자'이자, 소녀를 돕지 않은 '비정한 어른'이 됐다. 진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아이를 잃고 몇 년이 지난 뒤 해외 여행을 간 중년 부부의 이야기다. 아내는 영어를 할 줄 모르고, 남편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상황이고, 아내는 근심걱정 없지만 남편은 근심걱정이 가득하다. 더러운 곳도, 말이 안 통해도, 자신은 불안한데, 아무 생각도 없이 자신이 짠 루트를 졸졸 따라다니며 잘 놀고 먹는 아내를 보고 남편은 점점 짜증이 난다.

 그러다가, 결국, 돌아가는 날 아내가 여권이니 뭐니하는 것들이 든 가방을 호텔에 두고 오는 바람에 남편의 분노는 폭발한다. 아내에게 화를 내고, 아내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기차는 떠난다. 아내를 싣고, 자신은 플랫폼에 서있는데. 남편은 허겁지겁 역무원에게 가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영어가 터져나오지 않는다. 역무원은 당황해서 영어를 버벅거리는 동양인을 바라본다.


 몇몇의 단편들은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우울하고, 질척한 감정이 들 때 과거를 돌아보며 써내려간 일기를 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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