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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랑종

이베 2021. 8. 5. 02:13

 

 

 블로그 오백 년 방치해두다가 갑자기 쓰는 후기가 <랑종>. 사실 이걸 쓰는 이유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누군가와 제대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는데, 이후에 점점 감상(-불호-)이 쌓여가기만 해서 어딘가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영화가 개봉하고 며칠 되지 않아서 보러 갔으니 본 지는 좀 됐다.

 예고편이 떴을 때 나홍진 감독(마찬가지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과 태국 감독의 콜라보라니. 재밌을 것 같다. 페이크 다큐에 민속신앙, 무당 같은 이야기? 너무 내 입맛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태국은 은근히 공포 강자니까! 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대감을 키워나가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평이 너무 갈리는 거다. 그래서 보지 말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평이 갈리면 갈릴수록 의문만 가지게 돼서 내 눈으로 확인해보자, 싶었고 친구가 마침 영화 쿠폰이 있다고 해서 보러 가게 됐다.

 나는 <랑종>을 <곡성>보다 싫어하는 영화로 꼽게 되었고, 그 이유는 여러 트리거 및 여성의 물화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이유가 있어서 주절주절 적어보려고 한다. 이 블로그의 다른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오히려 좋아하는 영화보다 싫어하는 영화에 말이 많다. (…….) 스포일러가 그냥 냅다 들어있기 때문에 아래 접은 글은 스포일러가 괜찮은 사람만!

 근데 이 영화를 굳이 봐야 할까? 싶기 때문에 영화를 포기한다면 이 글을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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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는 자극적인 소재를 과하게 썼다. 스쳐 지나가는 것까지 다 포함한다면 G-19 (고어) 와 R-19 (성적 수위) 는 그냥 기본!!! 이고, 동물 학대, 근친상간, 친족살해, 어쩌고저쩌고……. 매운 음식 만들라고 했더니 불닭 소스에 베트남 고추 넣는 걸 본 기분이다. 이렇게 넣는다고 맛있어지지 않는다.

 나는 일단 고어나 귀신, 악마, 오컬트, 스릴러, 살인 뭐…… 웬만한 건 다 잘 본다. <랑종> 너무너무 무섭다! 라는 평 때문에 궁금해서 보러 간 거였는데 (먼저 보고 온 친구가 잠을 못 잤다고 말해줬다.) 위의 과한 자극적인 소재가 가끔씩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고 개연성을 망쳐 영화 전체적인 이해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큰일 날지도…….' 이러고 보다가 흐에? 뭐야? 이렇게 돼버리는.

 

1.

 영화의 초반, 밍은 신병이 걸려서 하혈을 하는 것처럼 나온다. 왜냐하면 밍의 엄마이자, 신을 받고 싶지 않아 동생에게 미룬 노이도 그랬기 때문에. 그렇다면 여기서 첫 번째 의문은 왜 하혈이어야 했는가? 이게 만약에 신병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거라면 굉장히 미묘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월경이라는 현상이 있으니까. 눈에서 피가 난다면? 눈에서는 당연히 피가 나면 안 되니까 무서울 법하다. 그리고 비주얼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하혈을 한다? 무서울 수는 있다. (몸에 이상이 생겼나 싶으니까) 그런데 짜증이 더 크지 않을까? 심지어 이걸 보는, 월경을 하지 않는 관객은 그 고통이나 짜증, 두려움에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까? 그냥 피만 50리터정도 나오면 무서워지나? 보는 내내 '그래 실제로 생리통으로 쓰러지는 사람도 있는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그, 대물림되는 신(이름을 모르겠다)이 들어올 때의 신병만 이 현상을 자아내나? 영화에선 남자 무당도 나오는데 그 사람은 다른 신을 받아서 하혈은 안 했나? 이건 그냥 세계관적 의문이지만 궁금해져서 ??? 이러고 있었다.

 

2-1.

 스토리 라인이 너무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밍에게 들어온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중반까지 계속 탐구를 하는데, 관객으로 하여금 은근히 의심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페이크 다큐 형식이다 보니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이미 이거다!!! 이러고 그걸 파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병이다!!! (그럼 신내림을 받아야 하지 않나?) 했는데 뭔가 아니다 싶어서 봤더니 밍은 오빠와 근친 관계였다!!! (근데 뭐 어쩌라고) 오빠가 자살을 해서 그 혼이 밍을 괴롭히는 거다!!! (아니 사랑하는 사이라며) 그래서 고생해가며 기도 열심히 드렸더니 또 아니다!!! 이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령이다!!! 온갖 나쁜 령이 다 들어갔다!!! < 여기쯤 오면 헉!!! 그렇구나!!! 이런 반응이 안 나온다.

체감상 이렇게 된다.

 

2-2.

 위의 사유로 인해서, <랑종>은 영화 러닝타임 내내 나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다 죽이고 막 난리 났다. 그런데 여기서 페이크 다큐의 특성상 관객은 함께하는 것보단 한 발 뒤에서 바라보게 된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악의와 불행을 그냥 해결할 방법도 찾지 못하고 바라보게 되는 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함께하는 느낌을 느끼지 못해서 공포심을 더더욱 못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맨들은 죽기 살기로 카메라를 챙긴다. 아니, 무슨 이유인지는 알겠는데 자꾸 공포 게임 <아웃라스트>가 생각났다. 자기 몸에 장기 튀어나오고 사람들이 자해하고 죽어 나가는 걸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겁도 없다. 나였으면 촬영이고 나발이고 카메라로 다 후려치고 도망갔다. 이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감독님 이 이전에 <아웃라스트> 하셨나요? 좀비물도 좀 보고, 슬래셔물도 보고, 아무튼 그 전에 과한 자료조사로 온갖 걸 다 넣었나? 싶은.

 

 

3.

 그리고, 만약에 엄청난 악령들이 (대체 뭔지도 모른다.) 밍의 몸에 들어왔다고 치자. 그런데 밍이 하는 행동은 뭐랄까……. 선을 어마무시하게 넘다가!!! 그래서 이건 왜 하는데? 싶어서 그 온도 차가 과하다. 기괴한 행동을 한다고 말하려면 집에 설치한 관찰카메라에 가족들을 빤히 쳐다보거나 집안 물건 부수면서 돌아다니는 것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별안간, 회사 사무실에서 남자를 바꿔가며 섹스를 하며, 테이블 위에서 소변은 왜 보고, 속옷은 입에 왜 물고 가는 걸까. 주변 스탭들 중 그 누구도 이건 왜 하는 건가요? 라고 물어보지 않은 걸까? 심지어 회사 사무실 CCTV씬은 그냥 불쾌 그 자체였다. 쿠션 하나 없이 그냥 관음적인 (CCTV니까 당연하다.) 시선으로 찍힌 영상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신음이 난무하는데 나는 영화관에서 이걸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딴 장면 보겠다고 돈 주고 영화관 온 게 아니다.

 문제의 장면인 동물 학대, 살해 장면은……. 단연 <랑종>에서 가장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사실 나온다는 걸 알고 갔는데, 어떤 느낌으로 심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갔다가 영화 러닝타임 중 유일하게 눈을 피하고 귀를 막았다. (소리가 너무 심했다!)

 

 내가 의문이고 불만인 건, 소재를 사용했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쓰는 방식이다. 뭔가를 만들어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으로서 연출이라는 건 정말 중요한 건데 그냥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다. 하물며 유튜브에 올라오는 브이로그 하나도 구도나 장면을 생각하고 그 영상에 맞는 편집을 넣는데, 디립다 찍기만 해서 잔인합니다!!! 이러고 보여주면… 나는 슬래셔 무비를 보러온 게 아니다. (심지어 B급 슬래셔 무비를 좋아하는데도.)

 그리고 슬래셔 무비라고 쳐도 못 만들었다. 긴장감도 잘 모르겠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위에 적어둔 온갖 장면이 난무하고 아마도 영화관이 아니었으면 개그 장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웃고 있었을 것 같다. (어이없어서.) 2021년인데, '악의' 따위의 주제 하나만 가지고 공포 영화를 만드는 건 좀 그런 것 같다. 심지어 예전 클래식한 공포 영화들도 시대에 발맞춰 리메이크를 하고 있는데.

 

 아무튼, 나홍진 감독님……. 다시는 보지 맙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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