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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블로그에 글 쓰는데 <랑종> 쓰고 끝내기 어쩐지 억울해서 사랑하는 <블랙 위도우>도 적고 가려고 한다.
<블랙 위도우>는 정말 너무 오래 기다렸다. 계속해서 개봉이 늦춰지고, 덕분에 <엔드게임> 이후 마블에게 생겼던 복잡한 감정들이 많이 빛을 바래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블랙 위도우>를 본 뒤에 '아…!! 나 제법 마블에 감정이 많았다!' 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기쁨과 분노가 공존하는 그런.
사실 <블랙 위도우>는 보러 가기 전에 아무것도 안 찾아보고 가서, 시점이 어딘지도 몰랐다. 일단 <엔드게임>에서 나타샤가 그렇게 됐으니……. (생각만 하면 아직도 마블 본사에 불이라도 지르러 가고 싶다.) 그 전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최악의 시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였던 거다. 영화가 시작하고 음…… 잠깐, 설마 이거? < 맞았다. 그리고 회귀 후 기억을 되찾은 사람처럼 끝을 알고 달려가며 가슴이 벅차는 사람이 됐다.
아무튼,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으러 온 사람들은 내용을 다 알 테니까 굳이 설명해야하나 싶지만. <블랙 위도우>의 가장 좋은 점은 꽁꽁 싸매여있고, 뭉텅이로 덜어내졌던 나타샤의 설정에 개연성을 부여해줬다는 점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사실 MCU만 본 사람으로서 아는 거라곤 뭐, 러시아의… 스파이였고 그놈의 불임설정정도였을까.
직전에 <랑종>의 후기를 쓰며 연출의 문제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블랙 위도우>는 어땠는가?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연출의 기본은 보여줄 부분을 보여주면서, 그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과하게 자극적인 선을 넘는다면 은근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 (여기서 연출의 기술이 갈린다고 느낀다.) <블위>는 그 점을 완벽하게 해냈다.
레드룸은 잔악무도하고 여성혐오적인 곳이지만 그걸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문득 떠오르는 영화는 <레드 스페로>이다. 러시아 여성 스파이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이따구로 하겠다는 건 기만 아니냐? 싶었다.) 빠르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이들이 여자아이들에게 행한 것들을 알려준다.
그와 함께 (이건 연출보다는 각본과 감독님의 MCU 서사에 대한, 그리고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블랙 위도우>에서는 나타샤의 유년시절부터 어떤 식으로 살아왔을지, 어떤 식으로 그걸 극복하여 나름의 자유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게 나타샤 로마노프의 삶이었던 거다! 엄청나게 많은 영화 속의 몇 마디 대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블위>는 마블 특유의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내는 스케일은 유지하되 재질이 좀 매트해졌다. 여기에는 철로 만들어진 로봇 같은 갑옷을 입은 억만장자도, 방사능 거미에 물려 거미줄을 뽑아가며 허공을 나는 친절한 이웃도, 초록 피부를 가진 거대한 박사도, 망치를 휘두르며 천둥을 다루는 신도 없다. (여기까지만 적자, 프로필 작성하는 것도 아닌데.) 나오는 이들이라고는 얄팍하게나마 정이 이어진 가족과 해방을 기다리는 여자들 뿐이다. 슈퍼 솔져라고 해도 얼음에 갇혀있던 사람이 아니라, 무턱대고 싸우는 허세 작렬남이고, 섹시한 여전사 같은 게 아니라 인간성을 버리게 키워졌으나 인간성을 가진 여자들이 나온다. 하늘을 날지도, 우주선을 타지도 않고, 오토바이를 몰면서 손수 헬기를 운전한다. 싸움은 또, 화려함보다는 진짜 맞으면 아프겠다, 싶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게 왜 이렇게 좋은지.)
주절주절 적어놨는데 그냥 완전 오타쿠 mood 돼서 감상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어엿하면서도 인간미가 보이는 언니였고, 옐레나는 버르장머리 없는 (ㅋㅋ) 동생이었으며, 멜리나는 매정해 보이지만 보호자 같은 면이 드러나는 엄마였다. 거기에 단순무식함이 돋보이는 알렉세이까지 합쳐져 한 가족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긴 시간동안 나타샤 로마노프를 놓치고 있었나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연대와 유대, 도움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더욱 좋았다는 건 뭐 말할 것도 없고.
주절주절 뭔가 더 적고 싶은데 졸려오기 시작해서 이만 줄이기로 한다.
마블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 마블, 그리고 블위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최악의 타이밍에 줬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건 뭐 엎어진 물 주워담는 것도 아니고……. 쿠키나올 때는 진지하게 미국행 비행기가 타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나타샤 로마노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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