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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보다 다른 포스터가 더 좋은데.
※스포일러 주의※
트위터에서 여성영화 추천 해시태그가 돌았을 때, 여성성장물이고 가부장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봤던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왓챠에 들어왔길래 후다닥 봤다. 왓챠 팡인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에버노트에 처음으로 녹음 기능을 써봤는데 피씨에서 어떻게 트는 건지 모르겠어서 못 하고 있다. 나름 후기를 녹취하고 옮겨적으려고 했더니...
영상이 아름답다. 터키의 시골, 바다, 숲… 자연이 왕창 나오는 화면에 빛이 흩뿌려지고, 다섯 자매의 웃음소리가 퍼져나가면 화면이 즐거움으로 가득찬다. 하지만 즐거운 물놀이는, 풀숲을 헤치고 남의 나무에서 사과를 서리해먹으며 깔깔거리는 시간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끝난다.
다섯 자매는 바다에서 남자아이들과 노는데, 그때 기마전을 한다. 남자아이가 밑에 자매가 위에. 그것때문에 '우리 손녀가 외간남자 목에 가랑이를 비비다니!' 하는 반응으로 한 명씩 방으로 끌고 들어가 체벌한다. 처음 그들의 즐거움이 박살났을 때, 나는 끔찍하다고 생각했으나 이게 내게서 멀리 떨어진 일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학창 시절에 무슨 행동이나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남자들을 꼬신다는 식으로 몰아진 적이 많지 않나?)
할머니의 체벌이 끝나고, 저녁에 자매의 삼촌이 온다. 삼촌은 더 빻았다. 심한 체벌을 하려고 하는 듯 했다. 더는 오냐오냐 (이미 오냐오냐한 적 없다.) 해주면 버릇만 나빠진다고, 버릇을 똑바로 잡아야한다고 소리친다. 그걸 막는 이는 낮에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녀들을 미래의 창녀 취급했던 할머니였다. 그러지 말라고 말하며 삼촌을 막아세우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이상해졌다. 가해자인 할머니도 다른 가해자인 삼촌에게서는 자매를 지키는 것인가? 하는 생각. 가부장제의 피해자이자 지지자로 살아온 여성들은 랄리의 자매를 억압하기도, 체벌하기도 하지만, 남성들의 체벌에서 그들을 막아주기도 했다.
자매들은 처녀 확인용 검사를 받기도 하고, 집 안에 감금되어 신부수업을 받고, 차례차례 도살장에 끌려가듯 결혼을 맞이한다. 과거 한국에서도 그랬으나, 이건 맞선이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데리고 와서 결혼해라! 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첫째와 결혼시키려고 데려온 남자였으나 첫째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으니 애인과 결혼을 하고, 옆에 있던 둘째를 데리고 와 얘는 어떻냐고 묻는다. 마치 옷 가게에서 다 팔린 옷 대신해서 비슷하지도 않은 옷을 비슷하다고 들이밀었는데 그냥 어찌됐든 걸칠 옷가지면 된다는 이유로 사가는 것 같이.
둘째는 결혼 후 첫날 밤을 보내지만 피가 나오지 않는다. 처녀막(질막)이 없다! 는 의심을 받는다. 이 장면에서 크리피 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조선시대에 첫날 밤을 보내는 방 창에 구멍을 내서 관음하던 관음증의 민족과는 약간 다르지만, 성관계가 끝났을 때 문 앞에서 다들 서서 문을 두드리며 '시트를 보자!'고 한다. 이게 무슨 변태가 아니고서야
문제는 이미 차고넘쳤으나 셋째의 결혼에서 크게 문제가 생긴다. 셋째의 결혼이 결정되고 나서 폭식에, 불안해하더니 급기야 자살해버린다. 놀랍게도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넷째도 결혼을 해보낼 생각이었다는 거다.
드디어 랄리의 이야기를 한다. 랄리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냥 평범한 어린 아이였다. 성에 대한 관심도 많고, 노는 걸 좋아하고, 학교에서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셨고, 말광량이에, 도망치고 싶어하던 아이. 언니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계속해서 이스탄불에 가자, 고 말하던 아이.
세 명의 언니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지만 랄리에게는 한 명의 언니가 남아있었다. 랄리는 차를 모는 법을 야신이라는 남자에게 배운다. 이 영화에서 단 한 명 자매를 도와준 남성 캐릭터였다. 차를 모는 법을 배운 랄리는 차근차근 넷째 언니와 탈출할 방법을 꾀한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결혼은 코앞에 닥친다. 그녀들은 도망친다. 탈출하고 차를 몰고 달린다. 야신에게 도움을 청해 이스탄불로 떠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섯명의 자매들은 그 누구 하나 '순종적이고 정결한' 여성의 캐릭터는 없었다. 노는 걸 좋아하고, 집안일이고 나발이고 모르겠고, 섹스에 관심이 있다. 단정하고 몸을 가리는 것보다는 몸을 드러내더라도 예쁜 것을 좋아한다. 랄리는 풋볼 광팬이다. 그렇지만 다 똑같이 신부수업을 받고,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라는 듯이 달려간다. (물론 자기들이 직접 달려가는 건 아니고 가부장제 속 으른들이 끌고 가는 것이다.) 어째서 다섯 자매의 행동은 달랐을까? 어떤 이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도 사랑하는 이와 할 수 있고, 아닌 사람이 더 많다. 도망치는 이도 있을 것이지만 그게 쉬울 리는 없다. 탈출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니까.
막내인 랄리가 차를 몰고 탈출하는 것에 느꼈던 짜릿한 감정은 가부장제 속에서 살고 있는, 그리고 내가 억압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이라면 모두들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랄리는 어렸고, 소녀였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묶어둔다고 묶여있을 소녀는 아니었다. 길들이려고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 사람이니까.
<무스탕 : 랄리의 여름> 소리 치고 도망치는 가부장제 속의 여성의 삶을 아름다운 화면 속에 그려냈다. 너무 예쁘게 들어오는 빛에 아직 아이같은 자매들의 모습에 상반되는 사회가 끔찍했다. 그런 크리피하고 욕 나오는 상황을 자극적이지 않고 포르노틱하지 않게 잡아낸 것도 굉장히 좋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줄었고, 억압당하는 이를 잡아서 괜히 내가 우위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 않게 했다. 꼭 다들 한 번쯤 보셨으면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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